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쉬지 않고 움직였고, 계속 생각했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냈다. 그래서 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불안을 피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암에 걸리고 나서 내 삶을 처음으로 되돌아봤다. 암에 걸려서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꽉 잡고 있던 자존심 같은 내 존재 방식에 대한 집착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면서 할 수 있었던 일인 것 같다.
그렇게 되돌아 보니, 나는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에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좀처럼 쉬지를 않았다. 쉰다고 해놓고도 ‘쉴 때 할 만한 것’을 또 찾아서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더하기는 잘 했는데, 빼는 건 정말 못 했다. 무언가를 더하는 건 익숙했지만 그냥 두는 건 어려웠다. 그건 암 이후, 새롭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일종의 습관 같은 거랄까.
그래도 이제는 삶이 꼭 더하는 방향이 아니라 빼는 방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나는 왜 이렇게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을까?

가만히 써보니 나는 이런 것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첫째, 나는 계속 생각한다. 문제를 상정하고, 구조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둘째, 나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주변을 살펴보고, 정리하고, 청소하고,버리고, 다시 재정렬한다.
집에서는 계속 정리, 청소, 요리를 하고,
머리가 복잡해지면 회사로 가서 일을 한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구조화해서, 실행한다.
이걸 왜 할까.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불안.
나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 갈등, 통제, 규칙, 구조, 명분, 다름에서 오는 긴장, 서운함과 속상함, 그리고 동요.
그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나는 그것을 느끼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패턴을
‘회피 기반 대처(avoidance coping)’라고 설명한다.
감정을 직접 경험하기보다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방식으로
그 감정을 우회하는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정리하고, 계획하고,
환경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통제 전략’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낮춰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쉽게 불안을 느끼는 상태를 만든다는 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생각을 더 하고,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계획을 세우고,
일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행동하는 동안에는
잠깐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미뤄진 것뿐이었다.
불안하면, 행동하고, 그럼 잠깐 안정됐다가 곧 다시 불안해졌다. 사실 내가 불안한 원인은 외부의 것들을 통제할 수 없음에서 오는 것들이었으니. 그것들은 내가 뭘 어찌해도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니 말이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더 멈추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갔다.
어쩌면 나는 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나는 불안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그 모습이 싫었고, 어딘가 부족해 보였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수치스럽다고 느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불안해졌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정리했고, 더 맞추려고 했고, 더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그 불안과 통제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그대로 두어보려고 한다.
그것을 없애려는 시도조차 또 하나의 ‘행위’가 될 수 있으니까. 순환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는 새로운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이 올라올 때,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잠깐 그대로 있어보기. 해야 할 일이 떠올라도 즉시 실행하지 않고 조금 늦춰보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정리는 그대로 두어보기. 같은 멈추는 연습이다. 이것도 너무 노력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니 인정해나가고 있다. 내 문제는 “너무 많이 하는 것” 더하기 “멈추지 못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멈춰보려고 한다.
완벽하게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무조건 더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기준도 낮춘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 가장 완벽한 진리다.
이건 나를 바꾸겠다는 다짐이라기보다 나를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될 것 같다. 잘 안될 수도 있겠지만, 죽을 뻔 했다 다시 사는 이 선물 같은 인생에서 욕심보다는 있는 것을 소중히 다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불안도, 통제하려는 마음도, 멈추지 못했던 시간들도 모두 나였으니까. 그것도 다 소중한 나의 일부로 받아 들여 보아야지.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덜 하는 삶이 조금 더 건강한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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