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부조직육종암 환자다.
그 중에서도 PEcoma 라는 희귀 육종이다.
주위혈관상피세포종. 혈관 주변(perivascular)에 존재하는 특이한 상피양(epithelioid) 세포에서 발생하는 종양군이다.
처음에는 암 이름도 무척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의사선생님들도 잘 모른다고, 되게 희귀하다고 하고, 전이도 온몸에 많이 되었다고 하고, 항암도 못 한다고 하니, 에라이 이렇게 죽도록 일만하다 끽하고 죽는구나 싶었다.
주변에서 너무 회의적이라 나도 얼떨떨하기도 하고 무력감과 공포심에 압도되어서 초인적인 힘으로 상황을 부인하고 회피하면서 얼레벌레 대충 다 포기해 버렸던거 같다.
흠.
이쯤에서 암을 진단받기 전을 회상해 보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아니, 그 시절에도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들은 있었으니 끔찍까지는 아니고.
약간 가혹하고 숨막히는 삶이었던 것 같다.

처음 암 진단 받고, 고향으로 올라갈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던 휴게소 만두라면이다. 그 이후로 3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고, 1년 전부터 2-3번 라면을 먹어봤지만 그날 그 휴게소에서 먹었던 맛은 따라올 수가 없다. 인생 마지막 라면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던 그때 그 꿀맛은 다시 느끼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수술하고는 몸무게가 36kg 이 되어버렸다. 간도 절제하고 복막도 벗겨내고 장기 여기저기 잘라냈더니 장은 자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굉장히 불안정했다. 화장실 때문에 곤욕이었다. 집 앞 수변로를 산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제는 한 번 걷기 시작하면 1시간은 거뜬하고 2시간은 걸어야 개운할 정도가 됐지만, 그 당시엔 정말 힘들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저 때도 배는 아팠고 잘 못 걸었고 수술 부위는 너무 당겼다. 고향에서 다시 내 집으로 내려와서 요양하던 나날이었는데, 동네 서점엘 갔고 저 책을 봤고, 사진을 찍었다. 그날은 구매하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왔던 그 당시 내 마음이 신비롭다.

나름 항암 식단을 시작하던 초창기. 귀엽게 차려먹기도 했고, 주변에서 많이 도움을 줬었다. 지금이야 음식에 껍질은 까지 않고 일물전체식을 하지만, 저 당시에는 야무지게도 온 채소와 구황작물의 껍질을 다 까먹었다.

아파 죽겠으니 다른 사람 시선은 신경도 안쓰인다. 허리랑 배에 바지가 닿으면 너무 불편하고 아파서 잠옷 바지를 일상복처럼 입고 돌아다녔다. 지금은 엄두도 안나는 행동들이다.

이건 수술 전날이다. 잊을 수 없는 암센터 1인실. 저때 전날 혈관 잡을 때 수술용 바늘이 너무 두꺼워서 혈관도 터졌었는데. 애써서 찌르던 초보 간호사 선생님이 생각난다. 몇번 실패 후 밤에 선배 간호사님이 오셔서 한번에 놔주셨다. 그분도 이제는 그때보다 더 능숙해 지셨겠지.

수술하고 수혈을 받았다. 이때부터 손바닥이 정말 심각하게 가렵기 시작했고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퇴원하고도 가려움증은 계속 되었고 어느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었다. 엄마가 집에서 이불을 따로 가져다 줘서 좋았었다.

수술 후 퉁퉁 부운 다리.

퇴원하고 산책하던 곳.

한동안 영양주사를 맞았다. 아산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 주변 암환자분들이 맞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동네 내과 원장님이 첫 진료 때 나에게 목어를 선물로 주셨는데 무척 감사했다. 그 때 해주신 말씀과 눈빛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기운이 없어서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숨이 나가고 나서 다시 들이 쉴 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들어있는 숨을 밖으로 내뱉기에도 버거웠다. 그 상태와 느낌응 이제와 다시 떠올려봐도 굉장히 생경하고 낯설다. 지금은 쉽게 그 상태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 감각이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게 바로 이제 막 죽을 고비를 넘긴 직후의 감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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