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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암환자가 되고 나서 마음 다스리기

by 지속과누적 2026.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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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83

23년 6월 26일에 암수술을 했다.
벌써 983일이나 지났다.

이제는 더이상 수술 부위가 아프지 않다.
몸 속 장기들도 각자 잘 자리를 잡은 것처럼 느껴진다. 수술하고 얼마 뒤까지는 자꾸만 배탈이 나서,
등산을 가려다가도 산입구에 서서 배가 안정될때까지 한참을 서성여야 했다.
조금만 빠르게 걸으려치면 명치부터 배로 이어지는 수술 부위가 당겨서 멈칫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밤산책 도중에 기분이 좋으면 가볍게 달리기도 가능해졌다. 시간이 약이다. 천천히 느리게 몸은 회복되었다.

그런데 마음은 더 느린거 같다.
더 천천히 더 느리게.
아주 조금씩 매일의 노력과 다짐이 켜켜히 쌓여야지만 남모르게 조금씩 변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어떻게 변하는지 도무지 그 변화를 눈으로 볼 수가 없다.
부단히 의식적으로 노력하던 것들이 몸에 벤 습관이 되고 나도 모르게 그것을 반복 하다보면 어느새 문득 마음이 한뼘 정도 깊어져 있더라.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마음의 길이 무엇인지. 평온함인가. 깊은 사랑인가. 자유로움인가. 인자함인가. 아니, 이 모든 것인가.

그저 이 기적같이 소중한 매일을 잊지 않고 감사히 살고 싶다. 벌써 900일이 넘게 새 삶을 살고 있으니 또 어느새 익숙해져버려서 이 감사함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일에서도 사람에게서도 나 자신에게도 욕심을 부리고 기대를 한다. 자꾸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바라고 또 기대에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또 무리하고 실망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를 제외한 세상과 타인은 예전과 같다. 다만 내가 자꾸 변한다. 처음 진단 받고 세상살이 해탈한 것처럼 지낼 때는, 얼마 못 살고 곧 죽을거라고 하니 모든게 허망해 보이더니만, 어느새 또 다시 속세에 미련이 넘친다. 내가 자꾸 변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나만 갈팡질팡이다. 결국 괴로움은 다 나에게서 나온 거였다. 내가 놓을 수도 잡을 수도 있는 거였다.
그리고 관성이라는 것은 나를 또 이전의 나로 잡아당긴다. 죽음의 문턱에 갔다 돌아왔을 때 적어도 그 삶에서 마음에 남은 괴로움에서만은 멀어지겠다 다짐했는데, 관성은 무섭게도 날 다시 이전으로 잡아당긴다.

마음은 어렵게도 천천히 느리게 변하는데, 관성은 기막히게 절묘하게 흔들리는 그 순간을 알아채고 날 다시 과거로 끄집어 당긴다. 다만 안심되는 건, 이제는 적어도 내가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럼 재빨리 정신을 집중해서 다시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적어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만은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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